[김준기의 사회예술 비평](28) 치유의 예술
김준기 | 미술평론가·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ㆍ치유를 넘어 비판·저항의 ‘기억투쟁’

예술은 치유의 방법이자 그 결과다. 예술은 타인의 고통은 물론이고 예술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아도르노는 예술이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가 아니라 그 상처를 송곳으로 계속 찔러 덧나게 만드는 기제라고 했다. 예술가들이 상처를 다루는 것은 그것을 아물게 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도록 들춰내서 사회적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기억투쟁을 벌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승일은 1980년대 말 학생미술운동의 과정에서 겪은 고통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포스트-트라우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임흥순은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를 돌아보며, 동시대 자본주의 질서를 관통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위로공단>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기라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전승일이 최면치료 과정에서 토로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한편의 비디오클립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으로 만들어냈다.

■전승일 ‘포스트-트라우마’ - 고통 어루만지기

미술대학 재학시절부터 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한국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다뤄온 전승일은 독립애니메이션 1세대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방독면을 쓴 샐러리맨이 등장하는 ‘내일인간’(1994)은 환경문제를 다룬 초기의 대표작이다. 그는 환경문제를 비롯해서 인권과 반전, 양심수, 제노사이드 등의 문제를 다뤄왔다. ‘사랑해요’(1997), ‘미메시스TV-에피소드1’(2000), ‘하늘나무’(2003), ‘Cold Blood’(2004) 등이 그의 대표작들이다. 야생동물과 풀꽃을 다룬 이상권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생명 순환의 고리를 다룬 작품 ‘똥이 어디로 갔을까’(2006)를 발표하면서 그는 작가주의 애니메이터로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애니메이션 그룹 ‘미메시스’ 활동을 하면서 다수의 창작물을 제작했으며, 미디액트 등을 통하여 독자적인 배급망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제노사이드 프로젝트로 6·25전쟁 시기의 국가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 주목했다. 그렇게 20여년 동안 생태와 인권 의제를 다뤄온 전승일은 정작 자신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1980년대 말 학생미술운동의 리더였던 그는 체포와 구금, 취조 과정에서 뿌리내린 트라우마의 씨앗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그 자신이 폐쇄공포와 정동장애를 동반한 트라우마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전승일의 ‘트라우마는 인간의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자신의 트라우마 치료과정을 담은 영상작품이다.



그는 사회의 상처만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돌보는 치유의 예술을 시작했다. 포스트-트라우마 프로젝트다. 지난해 뇌과학과 예술의 융합 전시 ‘프로젝트대전 2014 : 더 브레인’(대전시립미술관)에 단채널 비디오 ‘트라우마는 인간의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출품했다. 그가 출품한 섹션인 ‘뇌화한 마음(embrained mind)’은 뇌라는 물질의 작용에 의해 작동하는 마음 기제를 다룬 작품들로 구성됐다. 그의 출품작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는 물론 정신병동 감호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자신의 상황을 드러낸다. 트라우마에 관한 정신과 의사와의 인터뷰와 치료 과정을 담은 사진과 영상, 그리고 자신의 드로잉 등을 담은 이 영상은 자신의 정신병을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우리 사회의 고통과 상처로 연결하는 묵직한 은유다.

■임흥순 ‘위로공단’ - 노동의 소외 다각 포착

임흥순은 전시장과 극장을 오가는 융합의 예술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공공장소와 마을공동체, 예술계와 생활세계에 걸친 폭넓은 활동으로 노동과 공동체 의제를 다뤄온 사회적 예술가다. 그는 사진과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언어로 개별창작과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병행해왔다. 

임흥순의 ‘위로공단’. 자신의 가족사로부터 출발해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질서 속의 여성노동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회적 예술가로서 그의 지향은 초창기 작업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는 성남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믹스라이스, 보통미술잇다 등의 공공미술 그룹활동을 통하여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형 예술가로 성장했다. 근래에는 금천예술공장 입주작가로 지역 주부들과 함께 공동체예술 프로그램 ‘금천미세스’를 추진했다.

제주 4·3을 다룬 첫 장편영화 <비념>(2012)의 영화제 초청과 개봉관 상영으로 주목받았던 임흥순은 최근 <위로공단>으로 다시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장편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첫 상영되었으며,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으면서 재평가받고 있다. 

예술계는 물론이고 한국사회 전체가 그동안 워낙 노동의제에 둔감한 탓에 해외에서의 평가를 토대로 뒤늦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에는 지난 10여년간 끈질기게 노동의제를 다뤄온 노동의제의 예술가 임흥순의 실존과 지향이 잘 담겨있다.

임흥순은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노동자들을 다루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주목해왔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위치는 물론이고, 이로 인해 확대재생산하는 사회적 소수자성과 정치적 갈등의 문제를 다뤘다. 

그는 노동의 소외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모순을 다각적인 시각으로 포착한다. 그것은 여성과 비정규직, 지역, 이주민, 아시아인 등 온갖 이중 억압으로 옥죄어오는 고통과 상처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일이다. 

자신의 가족사에서 출발해 전 지구 속 준주변부의 중심인 한국과 그 주변의 동아시아 이주노동으로 까지 시야를 넓힌 임흥순의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예술이다. 

■김기라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 - 아픔 성찰

대안공간과 화랑, 비엔날레 등 유수의 미술문화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기라는 사회적 모순을 들춰내는 비판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화적 편재화 현상에 대한 비판을 비롯하여, 한국의 정치적 모순과 사회적 갈등을 담아낸다. 소비사회의 물질적 풍요 이면에 담긴 정신적 빈곤은 김기라가 동시대 대량경제 대량소비의 경제체제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발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기라의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 최면의학자 변영돈 박사가 전승일을 최면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품이다.



그는 치밀한 조사연구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특정 사안에 대해서 조사연구를 통한 정보의 수집과 사물 채집으로 풍부한 아카이브를 형성한 후 그것을 다매체 연동 프로젝트로 엮어내곤 한다. 

‘이념의 무게, 한낮의 어둠’에는 포스트-트라우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전승일이 등장한다. 35분짜리 영상에 담긴 전승일의 절규는 체포 구금 후 취조를 당하던 당시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한다. 구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데려다 달라는 간청이 거부당하고, 여자친구도 잡아오겠다며 협박하는 형사들 앞에서 수치심과 무력감에 빠진 자신을 회고하는 것만으로도 구토증세를 일으키곤 한다. “내가 너희를 평생 동안 잊지 않을 거야, 이 XX들!” 최면 상태에서 나오는 비의식 상태의 거친 언어들 속에는 우리 시대의 깊은 상처가 배어있다. 고통의 순간들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최면의학자 변영돈과 공동작품을 제작한 김기라는 최면치료 상태에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토로하는 전승일의 말과 표정 속에서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이 한 개인에게 남겨놓은 상처를 드러냈다. 수십년의 세월 동안 전승일은 자신의 상처를 돌볼 여유도 없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사회적 상처를 들춰 치유의 예술을 해온 것이다. 김기라는 그러한 전승일에게 최면 치료를 권했고, 그것을 영상에 담았다. 

자신을 취조하는 7인의 형사들을 기억하며 치를 떠는 모습에 관객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고통을 공감하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전’에 전시 중인 이 작품은 개인과 사회의 고통을 성찰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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